꼬꼬무에서도 다뤘던 소록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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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6 손흥민마스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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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노르웨이숲님의 댓글

  • 25 노르웨이숲
  • 작성일
일제가 끝났는데도 계속 된거야?

IillillIIlI님의 댓글

  • 21 IillillIIlI
  • 작성일
일제시대보단 여건 좋아진건 사실이지만 정관수술, 낙태 같은건 정부차원 정책으로 이어진듯‘한’이 서린 섬에 점차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된 것은 1945년 9월경. 김형태 원장이 부임하면서다.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원장이었다. 이 시기 직원 전용 지역인 소록도 장안리에 환자의 마을이 새로 생겼다. ‘직원지대’와 ‘환자지대’의 구분을 처음으로 깬 사례였다.1947년에는 환자들의 자치 활동을 주도하는 조직인 환자 자치회가 꾸려졌다. 현재 원생자치회의 전신이다. 소록도의 주인인 한센인들이 그동안의 억압과 통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마을을 둘러싼 각종 행정에 참여하게 됐다. 1946년 9월에는 녹산중학교가 소록도에 문을 열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이어 중학 과정의 교육시설이 들어선 것이다.한국전쟁의 발발은 점차 안정돼가던 소록도병원에 다시 암운을 드리웠다. 1950년 8월 인민군이 소록도에 들어온 이래 환자들은 육지에서의 식량 운반 등 각종 작업에 투입됐다. 환자들은 인민군가를 배우고 불러야 했다. 인민군은 감금했던 직원 11명을 소록도를 떠나기 직전에 사살했다. 한국전쟁 기간에는 북한의 한센인이 소록도에 수용되기도 했다. 북한에 진입한 우리 군이 철수 과정에 데려온 한센인들이다. 현재는 거의 모두 숨지거나 소록도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ahalfsodaus님의 댓글

  • 10 ahalfsodaus
  • 작성일
치료제가 비쌌나....도대체  왜.....

오르다말아님의 댓글

  • 75 오르다말아
  • 작성일
해부해서 뭘 안다고ㄷㄷ

겜신병자님의 댓글

  • 24 겜신병자
  • 작성일
그냥 인간 취급을 안했다는 방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