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안상호의 충격적인 행적들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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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완연히 내지화한 의사 안상호씨의 가정
https://www.nl.go.kr/newspaper/detail.do?content_id=CNTS-00094061665
일단 이 기사의 전문을 챗지피티로 현대한국어로 번역시킴
1918년 12월 10일 매일신보
「완전히 내지화한 의사 안상호 씨의 가정」
요즘에는 혼인으로써 양쪽의 손을 잡는 일선융화의 가정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일선융화의 모범이 되는 가정도 많아지고 있다. 이번에는 이러한 가정 가운데 몇 곳을 찾아 그 생활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 안상호 씨의 가정
안상호 씨의 집을 방문하였다. 안 씨의 집에 들어가 보니 그 가정은 모든 면에서 일본식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안 씨는 오랫동안 일본에서 생활하고 일본식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가정에서도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기자가 안상호 씨에게 생활에 관하여 묻자 안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지요. 나는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습니다. [일부 판독불명]”
안 씨는 자신의 생활이 이미 일본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 자녀의 교육
안 씨 부부에게는 자녀들이 있는데, 집안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한다. 아이들에게도 일본어를 사용하게 하고 있으며, 조선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안 씨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도 일본식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생활 자체가 일본식이므로 아이들 역시 그러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간 일부 판독불명] 아이들이 밖에서 생활하는 데에도 특별한 불편은 없다고 한다.
◇ 부인의 말
안상호 씨의 부인은 일본인 여성이다. 부인에게 조선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부인은 대략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별로 불편한 것은 없습니다. 이미 오랫동안 이렇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부 판독불명]”
또 조선 사람들과의 교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에 대해서는 평소 서로 교제하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생활하면서 특별히 곤란하거나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없다는 취지로 답하였다.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일본식으로 교육하고 일본어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일본식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 우리 집 식구
안 씨 가족의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이들은 집안에서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부모의 생활방식에 따라 일본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하 사진 하단 및 좌측 일부 판독불명]
이 기사는 이은(영친왕)과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한국명 이방자)의 결혼을 추진하는 여룐을 만들기 위해
(즉 일본 황족과 조선 이왕가의 결합을 추진하기 위해)
조선인과 일본인의 가정이 얼마나 화목하고 보기좋은지 일선융화된 모범적 가정을 바탕으로 선전하는 선전성 기사의 한꼭지임
이 기획의 대주제는 「왕세자 전하 가례 전에 일선동체의 가정 방문」 임
1918년 12월 5일 천황이 황족인 마사코와 이왕가의 이은의 혼인을 허가했고
1919년 1월 25일 이은(영친왕)과 마사코는 결혼하게 됨.
총 다섯 가정이 소개되었지만 이중 안상호가 가장 주목받은 이유는
1918년 12월 10일에 이 기사가 발행되고
1919년 1월 21일에 고종이 사망하며 안상호가 임종을 지키는데
이 기사의 굉장히 일본인적인 행실로 인해 독살설이 제기되었기 때문
(정치적, 현실적으로는 독살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됨)
2. 대정실업친목회 발기회원
회장: 조중응(趙重應)
부회장: 조진태(趙鎭泰)
간사 8명: 예종석(芮宗錫, 전무), 유해종(劉海種), 홍충현(洪忠鉉), 최강(崔岡), 김린(金麟), 방태영(方泰榮), 사일환(史一煥), 안순환(安淳煥)
평의원 19명: 한상룡(韓相龍, 평의장), 박제빈(朴齊斌), 백완혁(白完爀), 김중환(金重煥), 김용제(金鎔濟), 정구창(鄭求昌), 주성근(朱性根), 김한규(金漢奎), 유병필(劉秉珌), 김성기(金性璂), 민유식(閔裕植), 안상호(安商浩), 선우일(鮮于日), 박승기(朴承夔), 이강혁(李康爀), 엄주익(嚴柱益), 최진(崔鎭), 윤치호(尹致昊), 백형수(白瀅洙).
1916년 이완용 송병준을 고문으로 하여 중심으로 조직된
3.1 운동 이전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결성된 조선인 단체
대정친목회라는 이름은 당시 천황인 다이쇼덴노(大正天皇)의 연호인 다이쇼(大正)로부터 따왔다는게 정론
후에 250여명이 넘는 단체로 발전하지만
최초 발기인 29인중 평의원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신 해관 안상호 선생
같은 평의원으로
"조선인들은 머리가 비었는데도 잘난척하고 싶어 몸이 달아오른다."
"조선인의 특징은 한 사람이 멍석말이를 당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려고는 하지 않고 다 함께 달려들어 무조건 몰매를 때리고 본다는 것이다. "
는 명언으로 유명한 좌옹 윤치호 선생도 이름을 올리셨음.
3. 고종의 임종을 지켜본 의사
https://m.korea.kr/expertWeb/resources/files/data/document_file/2011/%EB%8C%80%ED%95%9C%EB%AF%BC%EA%B5%AD%EC%97%AD%EC%82%AC%EB%B0%95%EB%AC%BC%EA%B4%80_%EC%A0%84%EC%8B%9C%EC%A3%BC%EC%A0%9C_%ED%95%B4%EC%84%A4_%EA%B8%B0%EC%B4%88%EC%9E%90%EB%A3%8C_%EC%97%B0%EA%B5%AC%EC%9A%A9%EC%97%AD_%EA%B2%B0%EA%B3%BC%EB%B3%B4%EA%B3%A0%EC%84%9C.pdf
1919년
고종이 사망했을 때 고종의 임종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3인의 의사중 한명.
메인의사(전의)는 김형배
촉탁의 2명이 가미오카 잇코(신강일형) 과 안상호
이후 안상호 선생은 순종의 어의로 발탁되었음
4. 피습당한 이완용의 수술을 집도한 의료진
https://db.history.go.kr/download.do?fileName=kn_032_0070.pdf&levelId=kn_032_0070&utm_source=chatgpt.com
1909년
독립운동가였던 이재명 의사에게 피습당해 응급환자로 이송된 이완용 백작을 살려낸 일류의사중 한분
1910년 한일병합당시 안상호 선생의 춘추는 한국나이 39세 (1872년생)
참고 링크: 온라인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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