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전문가를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전문가를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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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ahan et al., Cultural Cognition of Scientific Consen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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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 사람들은 전문가의 결론이 자기 세계관과 맞으면 전문성을 고평가한다.
- 사람들은 전문가의 결론이 자기 세계관과 다르면 전문성을 저평가한다.
-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만 알려고 한다.
1. 문제 의식
많은 사회적 논쟁에서, 사람들은 전문가들이 이미 꽤 합의를 이룬 사안을 두고서도 계속 싸웁니다.
예를 들어서
> 지구 온난화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가?
> 인간 활동이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인가?
> 핵폐기물의 지중 처분(예: 온칼로)은 안전한가?
이런 쟁점은 결론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법 합의되어 있어서, 의견이 갈라지는 것은 정보 부족이 원인인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논문[1]에서는 이를 조금 다르게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위험이나 사실 판단을 할 때, 자기 집단의 가치관과 충돌하지 않는 형태로 정보를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논문[1]은 이를 cultural cognition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은 "무엇이 사실인가"를 중립적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 자신의 정체성, 정치적 입장, 집단 소속감이 흔들릴 것 같다면 그 사실 자체를 다르게 해석하려 듭니다.
2. "전문가 합의"의 비수용
보통 과학적으로 결론이 제법 합의된 건에 대한 논쟁이 발생했을 때
> "아, 저 녀석이 잘못 알고 있구나."
> "그러니 전문가들의 합의(=정설)를 알려주면 되겠다."
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논문[1]에서는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전문가들이 합의했다"는 말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먼저 이렇게 판단합니다.
> 그 분야 전문가들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 저 사람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 아닌가?
> 반대 의견인 전문가들도 있지 않나?
> 애초에 진짜 전문가가 맞나?
즉, '전문가 의견이 어떠하다'는 걸 따지기 이전에 '누구를 전문가로 인정하느냐'는 것부터가 문제라는 겁니다.
3. 실험
논문[1]은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이러한 가설을 검증하고자 했습니다.
응답자들의 세계관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뉘었습니다.
> 위계질서 vs 평등추구
> 개인주의 vs 공동체주의
연구자들은 이 세계관에 따라 사람들이 과학적 합의를 어떻게 다르게 인식하는지 보았습니다.
토픽은 아래 세 가지였습니다.
> 1. 지구온난화
> 2. 핵폐기물 지중 처분(예: 온칼로)
> 3. 은닉 총기 휴대가 범죄에 미치는 영향
응답자들은 각 쟁점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가 무엇에 동의한다고 생각하는가"에 답했고,
가상의 전문가 프로필과 그 전문가가 쓴 글 발췌문을 보고 그 사람이 신뢰할 만한 전문가인지 평가했습니다.
4. 결과 : 사람들은 자기 세계관과 맞는 전문가를 고평가한다.
4-1. 세계관별 "전문가 합의 인식" 차이(Figure 4)
|
쟁점 |
응답 |
위계-개인주의자 |
평등-공동체주의자 |
|
지구 기온 상승 |
전문가 다수 동의 |
19% |
78% |
|
지구 기온 상승 |
전문가 다수 부정 |
25% |
2% |
|
지구 기온 상승 |
전문가들이 갈림 |
56% |
20% |
|
인간 원인 온난화 |
전문가 다수 동의 |
12% |
68% |
|
인간 원인 온난화 |
전문가 다수 부정 |
32% |
6% |
|
인간 원인 온난화 |
전문가들이 갈림 |
55% |
27% |
|
핵폐기물 지중 처분 |
전문가 다수 동의 |
37% |
20% |
|
핵폐기물 지중 처분 |
전문가 다수 부정 |
17% |
35% |
|
핵폐기물 지중 처분 |
전문가들이 갈림 |
45% |
45% |
|
은닉 총기 휴대가 범죄 감소 |
전문가 다수 동의 |
47% |
10% |
|
은닉 총기 휴대가 범죄 감소 |
전문가 다수 부정 |
12% |
47% |
|
은닉 총기 휴대가 범죄 감소 |
전문가들이 갈림 |
40% |
42% |
4-2. 가상 저자를 "전문가"라고 판단한 비율(Figure 7)
|
쟁점 |
저자의 입장 |
위계-개인주의자 |
평등-공동체주의자 |
|
지구온난화 |
고위험 |
23% |
89% |
|
지구온난화 |
저위험 |
86% |
51% |
|
핵폐기물 지중 처분 |
고위험 |
63% |
85% |
|
핵폐기물 지중 처분 |
저위험 |
78% |
60% |
|
은닉 총기 휴대 |
고위험 |
25% |
78% |
|
은닉 총기 휴대 |
저위험 |
83% |
51% |
결과는 성향에 따라 제법 명확히 나뉩니다.
중요한 관찰은, 응답자들이 단순히 어떤 쟁점에 대해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입장과 맞는 결론을 말하는 사람을 더 신뢰할 만하고 지식 있는 전문가로 평가했다는 점입니다.
즉, 주장의 내용 뿐만 아니라 전문가성의 판단 자체가 편향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5. 분석
사람들은 자기 세계관에 맞는 결론을 말하는 전문가를 골라서 믿으며,
자기 세계관에 불편한 결론을 말하는 전문가를 덜 전문가답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은 무지(無知)와는 다릅니다.
무지라면 정보를 주면 해결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정보를 주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 사람이 어떤 결론을 말하는가", "그 결론이 내 정체성과 충돌하는가"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답을 얻어야만 충족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합의했다"고 말해도, 상대는 이렇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 "그건 진짜 전문가 합의가 아니다."
> "그 분야는 정치화되어 있다."
> "반대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 "네가 말하는 전문가는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
> "내가 믿는 전문가는 다르게 말한다."
6.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Kahan의 해석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심리적 비용을 느낍니다.
어떤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치적 입장이나 도덕적 질서가 위협받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개인주의 - 시장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지구온난화 문제는 과학 문제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사실이라고 인정하면 정부 규제, 산업 제한, 탄소세 같은 정책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떤 사실을 말하는 전문가의 권위를 깎아내려 자신을 방어하려 합니다.
7. 결론
이 논문은 우리가 허구한 날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자료를 들이밀며 싸워도 절대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는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멍청하지 않습니다.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생각보다 훨씬 능동적으로 정보를 처리합니다.
문제는 그 정보처리가 항상 진실을 향하지만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모르는 게 아니라,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만 알려고 합니다.
창조론 논쟁에서 “중간 화석이 없다”는 주장이 종종 이런 식으로 쓰입니다. 중간 화석을 제시해도 “그럼 그 사이의 중간 화석은?”, “그럼 또 그 사이의 중간 화석은?”이라고 요구 조건을 계속 이동시키면서,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을 증거의 범주 밖으로 밀어내는 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논쟁은 더 많은 팩트를 던져넣는다고 해서 끝나지 않습니다.
같은 자료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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