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육상전투 최초의 승리,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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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ikoa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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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육군 최초의 승전이었던 해유령 전투
하지만 부원수 신각은 상부와의 연락이 며칠간 두절된 상태였고, 도원수 김명원은 이를 탈영으로 오해하여 그의 처벌을 조정에 청원하게 된다.
당시 수많은 장수가 적을 피해 도망치거나 숨어버렸던 탓에, 군기를 잡기 위한 본보기로 신각의 처형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처형 명령을 받은 선전관이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각이 보낸 승전보가 조정에 도착한다.
당황한 조정에서는 처형을 중단시키기 위해 즉시 다른 선전관을 파견했으나, 그는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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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제인님의 댓글
- 메리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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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랑 김명원이 이 일 때문에 나중에 이순신을 못 죽였다는 해석이 가능해짐
달달구리님의 댓글
- 달달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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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두절인데 어떻게 저건 또 잘 찾아와서ㅠ
무타구치렌야님의 댓글
- 무타구치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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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행보관
국밥햄님의 댓글
- 국밥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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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은 안잡고 탈영병만 쥐잡듯이 잡고 있었나
녹물을마시는새님의 댓글
- 녹물을마시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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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대에 유도리 기대할수는 없겠지
허언증님의 댓글
- 허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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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탄핵할 때 정탁, 이원익과 함께 이순신을 옹호한 몇 안되는 중신이었다.[16] 당시 엄청난 분노를 쏟아내던 선조를 향해 이순신의 친구이자 그를 천거한 류성룡까지 선조의 분노에 눈치를 보며 이순신 탄핵에 찬성했던 상황이었고, 남인, 북인 할 거 없이 동조하고 언관들조차 건수잡았다고 신나서 실컷 물어 뜯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소신을 그대로 보여준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김명원이 이순신 탄핵 건에 중립을 지킨 이유는 이전에 신각 건으로 낭패를 봤기 때문에 이를 반면교사로 삼았다거나 또는 신각의 처형 건을 방패로 삼아 "이순신도 신각처럼 경솔하게 보내야 하겠습니까?" 라며 거리낌없이 직언을 질렀다는 해석이 존재한다.나무위키 펌
검은색님의 댓글
- 검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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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후로 조정에서도 트라우마 걸려서 여러번 확인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