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하기 위해 해적이 된 여자.jpg

작성자 정보

  • 51 서리꽃이핀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관련 정보: 카지노가이드

관련자료

댓글 30

요리왕님의 댓글

  • 23 요리왕
  • 작성일
봊간지 ㄷㄷㄷ

드워프여자성기사님의 댓글

  • 28 드워프여자성기사
  • 작성일
배가 존나 비싸긴 하구나. 귀족출신이 가진 재산 다 팔아서 배 세 척 사네.

Soyuz님의 댓글

  • 14 Soyuz
  • 작성일
존나비싼배+선원

이지남캐님의 댓글

  • 33 이지남캐
  • 작성일
무기도 사고 식량도 사고

창원시진해구이동거주중님의 댓글

  • 39 창원시진해구이동거주중
  • 작성일
1300이면 인력 ㅈㄴ갈아넣었을꺼니까

싱하형왔다님의 댓글

  • 13 싱하형왔다
  • 작성일
딱! 남편과의 결혼생활 기간 만큼 해적질 했네 .. ㅋㅋㅋ

isnrnsli91님의 댓글

  • 16 isnrnsli91
  • 작성일
난 항구를 떠도는 철새요!

닼린이님의 댓글

  • 18 닼린이
  • 작성일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면 매력적일거같네 ㅋㅋㅋㅋ

알바트로스님의 댓글

  • 30 알바트로스
  • 작성일
저러고 재혼한게 레전드... 얼마나 매력이 넘쳤던거냐

노오루야캐욧님의 댓글

  • 20 노오루야캐욧
  • 작성일
해적여제 칭호 달고있는 귀부인? 어캐참냐고 ㅋㅋ

카노넨님의 댓글

  • 18 카노넨
  • 작성일
그래서 별명이 브리타뉴의 암사자 였음해적질 멈춘뒤엔 잉글랜드 귀족이랑 재혼해서 잘먹고 잘삼

중립기어님의 댓글

  • 18 중립기어
  • 작성일
교수대가아니라 재혼해서 잘먹고 절살았다고?

실례합니다님의 댓글

  • 17 실례합니다
  • 작성일
잉글랜드 : 프랑스를 괴롭힌 그 유명한 암사자!! 너무조아

보랏빛기억님의 댓글

  • 13 보랏빛기억
  • 작성일
13년간 프랑스를 족쳤으면 잉글랜드에선 대영웅이지

카노넨님의 댓글

  • 18 카노넨
  • 작성일
그당시는 브리타뉴가 실질적으로 독립된 공국이라 저 부인이 프랑스 멕인 공이 크다고 브리타뉴 공국에서 대접을 후하게 해준 덕도 있음

f737님의 댓글

  • 43 f737
  • 작성일
국가공인 사략선이어서 영국 기준 합법일껄

보라매님의 댓글

  • 27 보라매
  • 작성일
바이킹이 더 유명하지만 사실 잉글랜드야말로 중세의 해적국가라 찰떡이었을듯

paperback님의 댓글

  • 17 paperback
  • 작성일
잉글랜드가 해적 된 건 훨씬 훗날일 텐데

인치야드파운드님의 댓글

  • 16 인치야드파운드
  • 작성일
뭐 사략질은 원래 유럽에선 옛날부터 즈언통이였음

돼지본갈비님의 댓글

  • 44 돼지본갈비
  • 작성일
하고싶은거 다했네

수적천석님의 댓글

  • 59 수적천석
  • 작성일
와 낭만 시바야대항해시대 4 오랜만에 해야겠네해적들 다뒤졌다

설효림님의 댓글

  • 26 설효림
  • 작성일
상여자네

착한말착한말님의 댓글

  • 20 착한말착한말
  • 작성일
더러운 뱃놈들아! 보물은 너희 다 가져라!대신 귀족새끼들은 전부 산채로 내 앞에 데려와!

려비님의 댓글

  • 17 려비
  • 작성일
위키보니까 13년이아니라 9개월 해적활동한거같은데

렙에이거적을려고들어왔다님의 댓글

  • 30 렙에이거적을려고들어왔다
  • 작성일
생애의 마지막은 흑사병이네

악동무지성님의 댓글

  • 11 악동무지성
  • 작성일
카탈리나 에란초 ㄷㄷ

camelia님의 댓글

  • 10 camelia
  • 작성일
그녀는 13년 결혼생활만큼인, 1356년까지 만 13년간 해적질을 했다.

병신이니이해부탁님의 댓글

  • 17 병신이니이해부탁
  • 작성일
엘바프야 내려 우솝

쓱간디님의 댓글

  • 25 쓱간디
  • 작성일
무력도 정치적 뒷배도 칠무해급!

하드코어미식가님의 댓글

  • 19 하드코어미식가
  • 작성일
1349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의 기사 중 한 명인 월터 벤틀리와 네번째로 결혼했다. 벤틀리는 잉글랜드에 협조하던 브르타뉴 영주 라울 드 카우르가 프랑스로부터 탈취한 잔 드 벨빌의 성을 자기 것으로 삼았다. 이에 분노한 라울이 벤틀리와 전쟁을 벌이려 하자, 에드워드 3세가 중재에 나섰다. 그해 10월, 에드워드 3세는 벤틀리가 이 성을 갖고 라울에게 보상금을 지불하게 했다. 그러나 라울은 이 판결에 불만을 품고 프랑스 편으로 돌아섰다. 이후 그녀는 엔봉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359년 12월 남편 벤틀리와 함께 중세 흑사병에 걸려 사망했다. 두 사람은 생전에 자식을 낳지 못했고, 그들의 영지는 잔 드 벨빌이 전 남편 올리비에 4세 드 클리송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올리비에 5세 드 클리송에게 넘어갔다.이게최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