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 프랑스, 구제금융 아닌 구제불능 영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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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적자·조기 은퇴 고수…금리·CDS 급등 '위기'
'달러 무한 발행' 美와 달리 유로화 발권력 없어…자본 유출 리스크
막대한 구제금융 비용…'유럽 분열' 최악 시나리오도 제기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석좌 교수
https://paulkrugman.substack.com/p/whats-the-matter-with-france
금융시장이 프랑스를 서구 세계의 '경제적 환자'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금리가 상승세를 보이지만, 지난달 프랑스 국채 금리의 급등세는 유독 눈에 띈다.
프랑스 국채 금리 상승의 주원인은 국가부도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다. 프랑스 국채 신용부도스왑(CDS) 가격, 즉 정부 채무불이행에 대비한 보험료가 최근 급등했다. 2010년대 초 유로존 위기 당시 남유럽 국가들의 CDS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나, 최근의 급격한 상승세는 우려스럽다.
이와 동시에, 결코 우연이 아닌 대규모 학생 시위가 전국을 덮쳤고 폭력적인 양상까지 띤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일으킨 푸틴과 친밀하고 EU에 회의적인 강성 우파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대표가 2027년 대선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린다.
논의를 이어가기 전, 해외 관찰자들이 프랑스를 논할 때 범하는 주요 오류인 '이념적 편향'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15년 전 유로존 위기를 지켜봤다면 영미권 금융 언론이 가진 강한 반(反)프랑스 정서를 기억할 것이다. 프랑스가 그리스보다 심각하게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이 쏟아졌다. 그러나 데이터는 이를 뒷받침하지 않았다. 높은 세금과 관대한 복지제도를 혐오하는 보수적 성향 때문에 프랑스의 실패를 은근히 바란 셈이다.
반대로 미국 진보진영은 프랑스의 금리가 여전히 미국보다 낮다는 점을 들어 문제를 축소하려 한다. 그러나 핵심은 프랑스 금리가 유럽 타국 대비 크게 올랐으며, 이탈리아마저 웃돈다는 사실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현재 프랑스 상황은 몹시 우려스럽다. 단지 프랑스만의 문제도 아니다. 유로존 회원국이라는 특성상 폭발적인 부채 위기로 이어져 유럽의 단합을 파괴할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프랑스의 재정 경로는 지속 불가능하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이미 매우 높은 데다, 전쟁이나 경기후퇴, 팬데믹 같은 비상사태가 없음에도 대규모 재정적자를 내며 부채를 늘리고 있다. 고령화로 인해 연금 지출이 세수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할 구조다.
이런 재정 위기는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 공통의 문제다. 하지만 프랑스는 은퇴 제도에 대한 현실 감각이 지독히 결여됐다는 점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2023년 기준 프랑스의 법정 은퇴 연령은 62세였다. 강력한 사회안전망 모델로 꼽히는 덴마크나 미국의 67세와 대비된다. 조기 수령 등으로 인한 실질 은퇴 연령 역시 서유럽 최저 수준이다.
마크롱 중도우파 정부는 은퇴 연령을 64세로 단계적 인상하려 했다. 선진국 기준으로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극우와 극좌 양당의 반대로 인상안은 내년 대선 이후로 동결됐다. 현재 은퇴 연령은 62세 9개월에 멈춰 섰다.
65세 기준 프랑스인의 기대수명은 87세로 미국보다 2년 길다. 굳이 보수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이 같은 조기 은퇴 제도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과도하게 관대한 연금 제도로 발생한 재정 압박은 교육 등 타 분야의 예산 삭감으로 이어졌다. 청년층의 희생으로 노년층에 막대한 보조금을 퍼주는 셈이다.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는 당연한 결과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다. 르펜은 은퇴 연령을 다시 62세로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엄청난 재정이 소모되는 공약이자 현실을 외면하는 우파 정치의 단면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거짓 공약에서 보듯 프랑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프랑스의 '환상 경제학'을 더 치명적인 위험으로 인식한다.
단일 통화인 유로를 사용하는 프랑스의 특성상 신뢰 상실이 비극적 위기로 번지는 시나리오는 명확하다.
신용부도스왑(CDS) 급등세가 경고음을 울리지만, 향후 5년 내 프랑스의 부도 확률은 1.2% 수준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낮게 평가됐다고 본다.
위기 전개 과정은 이미 2009~2012년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확인했다. 투자자들이 채권 매수를 중단하면 정부는 원리금 상환 자금이 부족해져 부도 공포가 확산한다. 이는 자본 유출과 금리 상승, 부도 우려 심화라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화폐 발행권을 가진 미국과 달리 프랑스는 유로화를 직접 찍어낼 수 없다.
2010년대 유로존 위기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무엇이든 하겠다"라는 한마디로 일단락됐다. 시장은 ECB가 부도를 막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지원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ECB가 프랑스를 구제할지는 의문이다. 2012년 당시 남유럽 국가들은 대대적인 지출 삭감을 단행했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지나쳤으나 구제금융의 명분은 됐다. 반면 프랑스는 재정 건전성 확보와 거리가 멀다. 독일 등 채권국의 거센 정치적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다. 유로존 위기 당시 긴축 고통을 견딘 국가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유로존 2위 경제국인 프랑스의 구제금융 비용은 막대하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를 넘어 '구제 불능(Too big to save)'의 영역에 들어섰을지 모른다. 유럽의 분열을 초래할 최악의 위기 시나리오다.
현재 시장은 위기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 중도파의 극적인 반전, 르펜의 온건화, 혹은 르펜 집권 후 국정 실패에 따른 정치적 자산 조기 고갈, ECB의 전격 지원 등 낙관적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미래를 낙관하기 위해 막연한 행운에만 기대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폴 크루그먼은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국제무역 및 경제지리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프린스턴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오랜 기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경제 정책과 국제 금융 이슈를 다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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