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조선) 장례행렬을 막는 놈들은 망자와 같이 묻어버리겠다(다소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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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ikoa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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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통과해 운구할 수 없으며, 읍면 소재지에는 사자가 나가는 문이 따로 있는 법인데, 보통 시신은 일반적인 문을 지나갈 수 없다.
을이라는 사제가 한번은 곤란을 당한 적이 있다.
무덤으로 가는 힘든 길이었는데, 가는 도중 넓은 시내가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마을 가운대로 곧장 길이 나오기에 몇 마일은 거리를 줄일 수 있었다.
그래서 장례 행렬이 다리를 건넜더니 마을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이내 주먹다짐이 오가고, 삽과 괭이를 휘두르는 등 싸움판이 벌어졌다.
무덤에 도달했을 때, 사제 이하 모든 교인이 회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을사람들을 격파해버렸던 것이다!
-영국 성공회 선교사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신앙과 풍속(원제: The English Church Mission in Corea: Its Faith and Practice), 세실 허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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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닉네임님의 댓글
- 불가능한닉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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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보다 가까운 주먹
왜용님의 댓글
- 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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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장례행렬이 지나는 길이 따로 있었구나 이거좀 흥미롭다
발로그림님의 댓글
- 발로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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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양에서도 시체가 도성 밖을 나갈 때 사용한 문이 따로 있었고 광희문과 창의문을 시구문이라고 부르며 죽은 사람이 나가는 문으로 주로 사용했다. 이 문이 있던 곳이 지금의 동대문구 디지털센터 남쪽의 한양공고 인근이다. 이곳은 당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곳으로 음기를 양기로 누른다는 일종의 음양설에 따른 걸로 추정한다. 음기가 강하다보니 신당 즉 무당들이 많이 모여살았고 그 마을을 신당동이라고 부르며 지금은 떡볶기(지금도 유명한가???)의 성지로 불리운다.
SQ님의 댓글
- 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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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운구행렬 좀 지나가겠다는데 막아? 아드레날린 300배다 ㅋㅋㅋ
푸른곰팡이님의 댓글
- 푸른곰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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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때 무슨 마일단위지? 라고봤더니 선교사썰이었넼ㅋㅋㅋㅋ













